카테고리 없음

고시원 물색하기

컴돌이 2024. 2. 1. 19:55

내가 고시원을 가는 이유는 임시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지하철 역과 가까운 총 4군데의 고시원을 돌아다녀 보았다.
첫번째 곳은 보통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화장실이 안에 있는... 근데 저런 화장실을 솔직히 쓰고 싶을까? 그래서 그냥 나왔다. 가격은 최소 35만원이었다. 창이 있는 곳은 45만원이었다. 그 돈이면 그냥 원룸을 가련다...
두번째 곳은 로카티를 입은 아저씨가 나를 맞이해주셨다. 관리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지만, 젊으심에도 너무 나에게 낯선 분위기에 많이 당황했다. 고시원장님과 통화를 하시면서 안내해주셨다. 2시 점심 어두운 복도에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는데 어딘가 울적했다. 38만원 방을 먼저 보여주셨는데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웬만한 곳보다 넓은 화장실이었다. 그러나 너무 비싼 탓에 싼 방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25만원 방인데 세상에... 진짜 침대 들어갈 공간밖에 없었고 발치에는 침대를 가로지르는 선반 위에 작은 TV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병동이 있다면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

 

세번째는 뭔가 느낌이 좋았다. 다이소 옆에 상가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는데 엘레베이터가 공사중이여서 새건물? 냄새가 났다. 같이 동행한 형이 말하기를 석면가루라고 한다. 나는 근데 그 냄새가 좋았다. 계단을 계속해서 올라 5층에 다다랐다. 이곳 역시 집주인분이 비어있었다. 고시원에 가기 전에는 미리 전화를 하는 게 상도인가 보다.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관리하는 분이 나오신다고 한다. 인상 좋으신 6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나오셨다. 24만원부터 26만원까지 방이 있다고 한다. 2만원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다 싶어 26만원짜리부터 보여달라고 했다. 밝은 조명과 햇빛 사이로 들어갔다. 그런데 세상에...

불이 꺼져있는데도 집이 햇빛으로 훤한 것이 아닌가!! 창문 밖에는 넓찍이 동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방도 화장실은 없지만 딱 필요한 것만 있어 쾌적했다. 그 방을 나온 후 나머지 방도 보러 갔다. 그러나 그 방이 너무 인상깊었는지 다른 방들은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공용시설로 발을 옮겼다.

낡은 화장실과 샤워칸엔 조잡한 호스와 비누만이 달랑 있었다. 조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주방도 깔끔했지만 뭔가 찜찜했다. 그 길로 좀더 고민해보고 결정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고시원을 나갔다. 방은 정말 좋았지만 공용시설을 보자 내가 살아왔던 곳들과 너무나도 달랐다. 정말 내가 돈이 없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뭔가 아쉽고 답답한 마음에 문을 나오자 형이 옥상도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한다. 호기심에 한번 가봤다. 그리고 또 와...
청춘 하이틴 드라마가 따로 없었다.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여기서 내 마음이 거의 굳혀진 것 같았다. 그래도 마지막에 보기로 했던 고시원도 보고 결정하자고 마음먹고 계단을 내려갔다.


8층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고 입구에 들어서자 뒤에서 빨래장갑을 낀 40대쯤 되보이는 안경을 쓰신 아저씨가 들어오셨다. 말을 거시길래 이야기해보니 이 고시원 사장님이셨다. 그 사장님을 보자마자 관리가 잘되는 곳임을 한눈에 알았다. 햇빛이 들어오지는 않지만 조명이 은은하게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방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둘다 25만원 방이라고 한다. 한 방은 복도 쪽으로 창이 나 있었고 다른 한 방은 바깥쪽으로 작은 창이 나있었다. 방 자체는 깔끔하고 좋았다. 바깥 풍경이 좋았지만 창이 너무 작았다. 아마도 난방을 위해 작게 창을 낸 것 같다. 두 개의 방을 보고 공용시설로 향했다.

예상대로다. 공용 시설이 엄청 깔끔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샤워실은 화장실과 분리되어 있었고 화장실은 냄새하나 안나고 깔끔했다. 공용 부엌도 가지런히 정돈되어 어렸을 적 집 부엌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정말 좋았으나 머쓱하게 좀 더 알아보고 오겠다고 말씀드리고 엘레베이터로 나섰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마지막 고시원을 무조건 갈 것 이렀다. 하지만 나는 세번째 그 햇빛이 비치는 방과 옥상에 완전히 꽂혀버린 것 같다. 결국 안정과 모험과의 갈등이였다. 고민 속에서 햇살의 고시원을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불안감도 같이 들었다. 아! 인생은 이런 법이렸다. 안정보다는 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가 원하는 걸 얻는 게 가치가 있다. 이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햇살의 고시원을 선택한 나는 그 기쁨을 글로 담아내지를 못하겠다. 그냥 신나서 주변 친구들에게 진짜 독립한 것을 그리고 내가 맘에 드는 고시원을 골랐다고 전화를 돌리며 자랑을 할 뿐이었다. 계약서를 쓴 후 송금을 하자 관리하는 할아버지는 열심히 냉장고와 티비를 준비하셨다. 냉장고와 침대 사이에 좁은 공간이 있었다. 할아버지께 의자가 혹시 있냐고 여쭤보았다. 의자를 찾아 나서신 할아버지가 소박한 의자를 갖고 오셨다. 그곳에 딱 들어맞았다! 이런 게 기쁨인가?

고시원 물색 끝. 한달간 살아보자!